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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의 문화

보령의 문화 글의 상세내용
제목 이제현
구분 역사인물
내용 고려때의 學者(학자)이며 政治家(정치가)인 이제현

이제현(李齊賢)은 고려(高麗) 충렬왕(忠烈王) 13년에 태어난 이 고장 출신의 대 유학자이며 문신이다. 그의 자(字)는 중사(仲思)이고 초명(初名)은 지공(之公)이고 호(號)는 익제(益齊)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또한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검교정승(檢校政丞) 진의 아들이다. 충렬왕(忠烈王) 27년(1301)에 나이 15세로 성균시에 장원하고 또한 문과에 급제하였다. 어려서부터 신동(神童)으로 소문났던 그는 1303년에 권무봉선고 판관(權務奉先庫 判官)등을 거쳐 충선왕(忠宣王) 3년(1303)에 선부산랑(選部散郞) 그리고 이듬해에 전교사승(典校寺丞) 삼사판관(三司判官)등을거쳐 1312년에 서해도안렴사(西海道按廉使)로 나갔다가 성균악정(成均樂正)을 지냈다.

충숙왕(忠肅王) 1년(1314)에 주자학자 백이정(白이正)의 문하에서 성리학(性理學)을 공부하다가 원(元)나라에 있는 충선왕(忠宣王)이 만권당(萬卷堂)을 세우고 그를 불러 들이자 연경(燕京)에 가서 원(元)나라의 학자인 요수(姚遂) 조맹부(趙孟부)등과 함께 고전을 연구했다. 이때 진감여(陳鑑如)이 찬사를 썼는데 그 필적과 그림이 국보(國寶)로 지정되어 현재 덕수궁(德壽宮) 미술관에 보관되고 있다.

나라의 바른 기틀과 독립국가로서의 면모를 지극히 존중하는 그는 충숙왕(忠肅王) 10년(1323)에 유청신(柳淸臣) 오잠(吳潛)등이 원나라에 글을 올려 고려(高麗)에 원나라의 성(省)이 되어 원날의 제성과 동등하게 청하였을 때 이제현(李齊賢)은 도당에 글을 올려 고려(高麗) 400년의 토대가 이로말미암아 무너진다고 간곡히 호소하여 성(省)이되는 것을 철회하게 하였다. 때로는 충선왕(忠宣王)이 모함으로 유배되었을 때 그 부당함을 밝혀 풀어나게도 했었다.

그는 문장에 밝을뿐만아니라 외교적 수완도 비상해서 원(元)나라 정치가들이 그를따르는 자들도 많았었다. 1336년엔 심양왕(瀋陽王)의 고의 모역으로 충숙왕(忠肅왕)이 잡혀가자 연경(燕京)에 가서 이를 해명하고 이듬해에 귀국해서 향리(鄕里)에 은거하였다. 그가 향리에 은거해서 뼈아프게 느낀 것은 작은 나라로서 큰나라밑에 사는 서글픔이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또한 선비들이 자칫하면 이성을 잃고 강자편에 붙어서 나라를 위태롭게 하는것을 서글프게 생각하였으며 고려(高麗)의 튼튼했던 옛일을 무척 그리워하며 오늘의 현실을 타개하는 방법을 여러모로 연구했었다. 나라의 사직이 흔들리는 것은 그 책임이 신하에게 있음을 통감했고 나라의 부강책을 세우기 위해서 무척 노력하였었다. 허나 그가 밝히는 학문적 근원이 선비의 도임을 밝히는데 역 점이 있으므로 국운을 바로잡기는 어려운 현실이었다.

충혜왕(忠惠王) 복위 4년(1343)엔 원(元)나라 사신이 왕을 잡아가자 글을 올려 풀어줄것을 요청하였으며 끌려가는 왕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원통해서 기둥뿌리가 빠지도록 분통해 하였다는 것은 후기에 그가 기록하고 있다.

충목왕(忠穆王)이 즉위하자 계림부원군(鷄林府院君)에 피봉되었고 공민왕(恭愍王)이 원(元)나라에 있으면서 즉위할 때 우정승에 임명되고 정동성사(征東省事)를 맡자 원종공신(願從功臣) 조일신(趙日新)이 자기보다 윗 자리에 있는 사람을 시기하는 것을 알고 자기의 벼슬을 내놓으므로서 그후에 조일신(趙日新)의 난때 화를 모면하였었다.
그 후에도 우정승을 두 번 지냈으며 공민왕(恭愍王) 6년(1357)엔 벼슬을 떠났었다. 벼슬살이를 떠나서는 시를 썼고 성리학자로서 후진들에게 이기(理氣)에대한 강론을 펴서 학문의 기틀을 튼튼히 하였던 것이다. 1362년 홍건적(紅巾賊)이 침입하였을때는 왕과 함께 경주(慶州)로 피난하였으며 그 후는 왕명으로 실록을 편찬하였었다.
당대의 큰 성리학자로서 각 문장으로 특히 외교문서에 뛰어났고 나라를 아끼는데 그 힘이 대단한 학자이며 정치가였다.

고려(高麗)말엽 나라의 기틀을 바로 세우기 위해 가진 고통을 안으로 소화해내면서 안으로 튼튼한 나라가 세워지기에 힘썼으며 기울어져가는 사직을 바로 세우기 위해 가진 노력을 바치다가 죽은 위대한 학자이며 정치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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